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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평통 제18기 해외지역회의 개회식 격려사

  • 작성자 : 연설문관리자
  • 등록일 : 2018.03.08
  • 조회수 : 4177

민주평통 제18기 해외지역회의 개회식 격려사 (인천 파라다이스시티호텔)

황원균 부의장님을 비롯한 미주지역의 평통 의원님, 이렇게 한자리에서 뵙게 돼서 저도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럽습니다. 먼 길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께서 와주신 시기가 참으로 절묘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된 그 시간에 여러분께서는 아마도 비행기 안에 계셨을 겁니다. 오늘 모처럼 그 시기에 여러분이 고국에 오셨으니까 내일 통일부 장관이 그 관계 말씀을 해드리겠지만 저 또한 그 얘기를 빼고 가기는 좀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통일부 장관의 말씀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마는, 저 나름의 정보와 시각을 여러분께 제공해 드리는 것도 여러분이 모처럼 모이신 의미를 더 높게 만드는 길이겠다 싶습니다.

이번에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특사단 5명이 평양에 갔습니다. 그 특사단이 평양에 머문 시간은 26시간이었습니다. 월요일 오후 3시에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해서 화요일 오후 5시에 국제비행장을 이륙했습니다. 이 26시간 사이에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선은 이 분들이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한 그 시간부터 과거의 평양 방문과는 다른 그런 대접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대형 리무진 2대가 배정이 돼서 우리 특사단이 나눠 탔고 앞뒤로 경호 차량이 안내를 하고 호텔에도 경호원들이 많이 배치돼 있었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평양은 교통이 그렇게 많거나 호텔에 투숙객이 많이 계시거나 그런 편이 아닐 텐데, 경호 차량을 붙이고 경호원을 배치했다는 것은 아마도 그에 앞서 있었던 북한 측 대표단 또는 특사단이 서울과 평창에서 받으셨던 예우랄까 하는 것과 비슷하게 했던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남측 특사단이 평양 공항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남측 특사단의 숙소는 고방산 초대소라는 곳이었습니다. 고방산 초대소라는 곳은 저도 안 가봤지만 평양 시내는 시내지만 조금 외곽에 있는 초대소라고 합니다. 원래 백화원 초대소를 많이 이용했었는데 백화원 초대소가 내부 수리 중이라고 하는 설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고방산 초대소에서 여장을 풀고 바로 노동당 본관에 가서 1시간 동안 김정은 위원장과 면담하고, 3시간 동안 만찬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까 4시간을 만난 셈이지요. 그 4시간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이 특사단 귀환 직후에 발표됐습니다. 여러분도 대충 보도를 통해 아시겠지만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6개 항입니다.

첫째는 4월 말에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모두 우리의 대통령께서 평양을 방문해서 평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만나는 건 역사상 처음입니다. 판문점에서 남측 지역, 우리 측 지역에 있는 시설이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고요, 북측 지역에 있는 시설이 통일각입니다. 남북정상이 만나기로 약속된 평화의 집은 판문점의 남측 지역에 있는 시설입니다. 분단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최고지도자가 우리 땅을 밟게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 합의 사항은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고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통화를 한다. 이것이 두 번째입니다.

세 번째는 김정은 위원장 본인의 말씀으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목표다. ‘비핵화’라는 용어를 직접 쓰셨다고 합니다.

네 번째는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고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미국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면서 대화 조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본인도 또는 북한도 대화상대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

다섯 번째는 대화기간 동안, 대화가 이뤄질 때까지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는 없다. 핵무기는 물론 상용 무력, 재래식 무기란 뜻입니다. 4월의 연합훈련, 한미 군사훈련을 연합훈련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예년 수준이라면 이해한다. 문제 삼지 않을 수 있다. 연합훈련의 조정은 한반도 평화정착이나 남북관계 발전과정에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안보상황에 진전이 있거나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거나 한반도 평화정착에 관한 문제에 어떤 진전이 생긴다면 그에 따라서 연합훈련에 조정이 있길 바란다는 뜻이었겠죠? 네. 그런 얘기입니다.

여섯 번째가 남측 태권도 시범단과 예술단이 평양에 오길 바란다. 평양에 초청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6개 항 중에서 4월 말 이전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게 두 가지죠? 하나는 남측 태권도 시범단과 예술단의 평양 방문, 그리고 또 하나는 핫라인 통화. 이 두 가지는 4월 말 이전에 있을 것으로 보이고요. 그 다음에 저희들이 기대하기로는 네 번째 항 북한이 미국과의 진지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 이것도 그 레벨이 무엇이든 간에 4월 말 이전에 북한과 미국 사이에 대화가 있을 수도 있고 있기를 바란다.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제 비핵화라던가 이런 것들은 앞으로 논의의 진척에 따라서 어떤 전개를 보일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지만 4월 말 이전에 당장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조금 빠른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결과 등을 가지고 조금 전에 정의용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워싱턴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리고 매티스 국방부 장관께 설명을 드릴 거고 아마도 맥매스터 안보보좌관께도 설명을 드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틸러슨 국무부 장관이 외국 출장 중이어서 국무부 부장관께 먼저 설명을 드리고 그 다음에 트럼프 대통령을 뵙고 설명을 드리는 그런 일정으로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방문을 마친 뒤에는 정의용 안보실장은 중국과 러시아에 가서 설명을 하고 서훈 국정원장은 일본에 가서 설명을 드리는 것으로 해서 한반도 상황의 전개가 구체화되기 전에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 이해와 협조를 얻는 노력을 다 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있었던 두 번의 정상회담도 4강의 이해, 특히 미국의 이해와 협조 하에서 이루어졌었습니다.

사실은 제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제가 2000년 5월 30일에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됐었습니다. 국회의원이 처음뿐만 아니라 4년에 한 번씩 임기가 시작되는데요, 등원을 하면 의원 선서를 하게 돼 있는데, 저는 첫 당선에서 선서를 못한 국회의원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제가 미국과 일본에 가서 6.15 정상회담 합의사항을 사전에 설명하는 멤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료 의원들이 국회에서 의원 선서를 하는 그 시간에 저는 워싱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도쿄로 돌아왔고 중국과 러시아에도 의원단 몇 분이 사전 설명반으로 그 때 간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4월 말 이전에 충분히 주변국들에게 설명을 해드리고 이해와 협조를 얻는 그런 노력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아까 제가 26시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26시간 만에 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26시간 사이에 무슨 협상이 이루어졌다든가 이렇게는 보지 않는 것이 옳을 거예요. 특사라는 것 자체가 가서 만나는 상대국의 최고지도자 면전에서 토론하고 협상하는 역할보다는 특사를 보내신 우리 쪽의 최고지도자의 뜻을 전달하고 상대 최고지도자의 뜻을 받아오고 이게 특사의 역할입니다. 말하자면 26시간의 평양 방문 그 이전에도 일정한 대화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답이 쉽게 나왔다 이렇게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2월 10일에 북에서 평창올림픽 개막식 참가를 명목으로 한 대표단이 왔고, 그 대표단 중에 한 분은 특사 자격으로 오셨습니다. 여러분, 기억을 하실 겁니다. 북한의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과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오신 김여정 부부장이 2월 10일날 서울에 오셨더랬습니다. 그 때 대통령께서 몇 차례 만나시고 많은 대화를 나눴을 겁니다. 그리고 그 때 약간의 제안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저의 추측입니다. 그 당시에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김여정 부부장이 전달을 했습니다. 그 친서에 평양에 와달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아실 겁니다. 그런데 그런 친서를 받으시고 현재 한반도가 처해 있는 상황, 국제적 현실, 미국의 생각 이런 것 등을 충분히 설명 드리고 그러므로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제안 겸 설명이 있었겠지요. 그런 것에 대한 답변을 이번에 들었다는 것이 현실에 가까울 거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 전후에 2박 3일 그리고 폐막식 전후로 2박 3일, 북한은 두 번의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그 두 차례의 기회를 통해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흐름을 많이 알고 있구나 하는 것을 저희들이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한국 정부가 운신의 폭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하는 것, 이런 것 등을 북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배경과 나름의 여러 가지 판단 그리고 우리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7월 베를린 선언 이후의 일관된 자세와 메시지 이런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보는 것이 대체로 맞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긴박한 순간을 여러 차례 넘겼습니다마는 이것으로 모든 것이 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변화의 큰 전기가 되긴 됐는데 괜찮은 시작이다 이렇게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비가 올 수도 있고 또 많은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과정을 저희들이 지혜롭게 넘겨 갈 것입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대화를 하기 위해서 제재를 푼다든가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재는 유엔의 결정이기 때문에 유엔이 대화의 시작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미국의 판단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요. 그런 것을 북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화 그리고 남북 사이의 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적어도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진전이 있는 단계에 가야 그에 부응하는 조치도 따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혹여라도 대화만을 위해서 뭔가를 제공한다든가 보상을 준다든가 제재를 느슨하게 한다든가 그러지 않겠는가 하고 걱정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런 일은 생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그럴 의사가 없다, 이런 말씀을 여러분께 드리고 싶습니다. 지혜롭게 잘 풀어 나가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번의 합의만으로 큰 변화가 당장 올 것이다 이렇게 보지는 않지만 이번의 기회를 소중하게 살려나가야 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4월 말이라는 시점을 저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혹시 지방선거용으로 그런 것 아니냐 하는 분도 계시는데, 지방선거는 6월 13일이니까요. 정말로 그것을 의식했다고 그러면 5월 말쯤 하는 것도 차라리 나았겠죠? 그런데 왜 4월 말인가.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에도 그런 대목이 나옵니다. 과거 두 번의 정상회담이 너무 늦게 이루어져서 별로 실현되지 못하고 끝난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6월 13일에 열렸죠? 그리고 6월 15일에 그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2000년 6월이면 김대중 대통령 임기 반환점 가까이 가던 그런 시기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97년 12월에 있었고요, 취임이 98년 1월 하순이었으니까요. 그런데 2000년 6월에 정상회담 했다는 것은 취임 이후 2년 5개월 뒤에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런 뜻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의 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일에서 4일에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2007년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그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임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굉장히 많은 분량의 합의가 발표됐습니다. 그런데 그게 시행되지 못하고 그 합의문이 휴지가 되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남북 간에 많은 합의를 하냐, 적은 합의를 하냐 하는 합의의 분량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라도 실행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중요함을 문재인 대통령께서 잘 아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1차 정상회담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정상회담 때는 정상회담 추진위원장을 통일부 장관이 맡으셨는데 2차 정상회담 노무현 대통령 때의 정상회담은 추진위원장을 비서실장이 맡으셨습니다. 그 때 비서실장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 아니십니까. 그래서 합의를 열심히 했는데 그게 이행되지 못하고 끝난 것에 아쉬움을 가장 뼈져리게 느끼셨을 분이 대통령이셨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4월 말이라는 것은 대통령 취임 1년이 되기 열흘 전 쯤 됩니다. 5월 10일에 취임하셨으니까요. 그래서 최대한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감사드릴 것도 있고 부탁드릴 것도 있습니다. 감사드리는 것은 우선 우리 교민사회 내에서 여러분이 늘 중심으로서 기둥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해 주시고 교민사회가 단합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견인해 주시는 데 대해서 감사드려야겠고요, 또 조국과 여러분이 사시는 그 나라 사이에 교량의 역할을 해주시는데 대해서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구나 평화통일 정책에 대해서 여러분께서 이해를 하시고 여러분이 사시는 그 나라 정부나 정치권, 그리고 우리 교민사회에 전달해 주시는 역할을 해주시는데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아까 제가 모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것이 남북의 합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우리 주요 국가들의 이해와 협력이 없이는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 평상시에 그러한 역할을 해주시는데 대해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는 미주에서 오셨으니까 그래서 제가 미국 정부와 우리 한국 정부 사이에 어떤 사전 협의를 하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사실은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가 있었고 그 신년사에서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선수단과 함께 대표단과 특사가 왔고 그 전후에 많은 대화가 있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내용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미국에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 때도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지지한다 또는 이해한다 하는 코멘트가 늘 나왔던 것도 충분히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러셨을 것 아니겠습니까. 심지어는 문재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는 말씀도 트럼프 대통령께서 트위터에 올린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한국 대통령의 특사단을 평양에 언제쯤 보내겠다, 멤버는 누구누구다 하는 것도 3~4일 전에 트럼프 대통령께 전화로 대통령께서 직접 설명을 해드렸고, 정의용 안보실장은 맥매스터 안보보좌관께 그런 설명을 상세히 해드리고 평양에서 돌아오자마자 워싱턴으로 날아가서 설명을 하겠다 그렇게 미리 예고를 해드렸습니다. 그 뒤로 중국, 러시아, 일본에도 약간의 시차는 있었습니다마는 사전설명을 했고, 사후설명도 이번에 이미 보도를 통해서도 그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 평양을 다녀온 당사자들이 직접 가서 설명을 해드리는 것이 바로 그분들의 이해를 얻고 도움을 받고자 하는 그런 취지입니다. 다행히 트럼프 대통령께서 ‘매우 긍정적이다’ ‘위대한 진전이다’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그러한 반응이 결과를 낙관케 한다까지 확대해석할 수는 없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의 대화가 열릴 가능성이 꽤 넓어 보인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정의용 안보실장, 이번에 특사단장으로 평양을 다녀오신 그 분이 트럼프 대통령께 뭔가 설명드릴 게 있겠지만 제가 조금 전에 여러분께 소개해 드린 6개  항의 합의문 그 이외의 것도 혹시 포함돼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뭔지는 제가 알면 폼을 더 잡겠는데 사실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은 웬만하면 모르려고 노력을 합니다.

여러분 거듭 환영해마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이 국면 또는 그 이후에도 여러분이 평통 위원으로 계시는 이 시기, 정부의 노력을 많이 이해해주시고요,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약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씀드리자면, 그저께 특사단이 평양에서 막 돌아와서 서울공항에 도착하기 직전에 저는 평택에 있었습니다. 미8군 본부가 평택으로 옮겼잖아요. 왜 거기 있었냐면 미8군 카투사 연합회, 옛날에는 전우회라고 했습니다마는 그 카투사 연합회와 미8군이 해마다 한 분씩 카투사 베테랑 중에 그 누군가를 선정해서 카투사 어워드라는 상을 주는데, 금년 수상자가 저였습니다. 제가 1974년 4월부터 76년 9월까지 29개월 2주일 동안 카투사로 복무를 했습니다. 그리고 카투사 교육을 받은 곳이 평택이었습니다. 그때 카투사 교육대 그러면 여러분은 잘 감이 안 오시겠지만 카투사 교육대의 구내식당, 스넥바를 하신 분이 홍수환 선수의 어머니셨습니다. 그럼 금방 감이 잡히실 거예요. 홍수환 선수가 어디 가서 권투를 해가지고 이겼다 그러면 그날 저녁 맥주 무료, 집합 면제, 군인들은 하룻밤이라도 점호 없으면 그게 천국이었지 않습니까. 그런 곳이었는데 바로 그 장소를 제가 44년 만에 가서 카투사 공로상을 받았습니다. 요즘은 실력이 있어야 카투사가 되는데요, 제가 카투사 됐을 때는 실력으로 된 게 아니라 운으로 되었습니다. 그때 병무행정을 투명하게 한다고 저희 때는 어떻게 배치를 했냐면, 군번 몇 번부터 몇 번까지 10명은 카투사, 몇 번부터 몇 번까지 10명은 어디, 이런 식으로 잘랐어요. 누군가가 빽이 작용했다고 그러면 저였을 리는 없고요, 제 앞뒤로 누군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찾아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되는데 아직까지 44년 동안 못 찾았습니다. 그 카투사의 경험이 저로서는 한미동맹의 작은 체험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사실은 지난번 트럼프 대통령이 오셨을 적에 제가 그 얘기를 대통령께 해드렸어요. 미8군에서 복무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놀라시더라고요.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저에게 그 때 계급이 뭐였냐 물으시길래 최종 계급이 병장 이었다 그랬더니, 매티스 국방부 장관이 군 출신이라 병장이 총리됐으면 무지하게 진급한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오면서 어느 시절에 어디에서 무얼 했느냐 하는 것은 지울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장 건장했던 시기에 한미동맹의 한 축을, 축이라고 하면 너무 건방지고요, 한 조각을 제가 체험했다고 하는 것은 저의 인생에 어찌됐건 빼 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여러분과 저하고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 많이 길어져서 미안합니다. 여러분 거듭 환영해드리고 감사말씀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첨부: 민주평통 제18기 해외지역회의 개회식 격려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