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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개회식 기조연설

  • 작성자 : 연설문관리자
  • 등록일 : 2018.06.27
  • 조회수 : 3384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개회식 기조연설 (제주 ICC)

존경하는 내외귀빈 여러분!
 
제13회 제주포럼에서 여러분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세계지도자세션에서 기조연설을 해주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님을 비롯해 브라이언 멀로니 전 캐나다 총리님,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님, 감사합니다. 을지사이함 엥흐툽신 몽골 부총리님과 올가 예피파노바 러시아 하원부의장님 등 국내외 지도자와 석학 여러분,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포럼을 준비해주신 원희룡 제주도지사님을 비롯한 관계자와 제주도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3년 동안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한반도 안팎의 동향을 개관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평화와 번영을 향한 최근 한반도 내외의 움직임과 정세의 변화를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연합군이 승리하며 1945년 8월에 막을 내렸습니다. 자본주의 최강국 미국과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연합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대한 승전을 위해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냉전이 잉태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가 항복하고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 1945년 2월의 얄타회담은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점령분배 등을 논의했지만, 그것이 세계냉전의 시작이 됐습니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에 따른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35년 만에 해방됐습니다. 해방 직후 한반도는 무정부의 혼란 상태였습니다. 그런 한반도의 남쪽에는 미국이, 북쪽에는 소련이 들어왔습니다. 1948년 8월에는 남쪽에, 9월에는 북쪽에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 기간까지 한반도는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그것이 해방 이후에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미소(美蘇)냉전이 없었다면, 한반도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는 가정은 합리적입니다.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는 3년 1개월 동안 전쟁의 참화를 겪었습니다. 그 전쟁에서는 미국 주도의 유엔군이 남한을,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도왔습니다. 그 전쟁으로 약 460만 명의 사망자와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세계냉전은 1989년 몰타회담으로 끝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1991년 소련방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쇄와해로 냉전체제는 무너졌습니다.
 
한반도에서는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이후에도 군사적 대치가 계속됐습니다. 우발적 군사충돌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89년 유럽의 냉전해체가 시작되고 소련방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자, 북한은 핵과 미사일의 역량강화를 본격화했습니다.
 
한반도의 강고한 냉전체제 속에서도 남북한은 간헐적으로 평화공존을 시도했습니다. 1972년에는 남북한 당국이 처음으로 자주, 평화, 민족단결의 통일원칙에 합의한 7·4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9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고, 이어 화해와 불가침과 교류협력을 약속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2000년에는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통일의 원칙에 초보적으로 접근하고, 경제 중심의 교류협력과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했습니다. 2007년에는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평화증진과 경제협력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시작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평화공존의 시도는 한반도 안팎의 공고한 냉전질서에 압도돼 좌절되곤 했습니다. 북한은 체제방어의 집념으로 군사력 강화로 질주했고, 한국은 정부교체에 따라 일관된 대북정책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관련 국가들도 남북한 교류협력 증진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작년 말까지 한반도의 군사적 불안은 최악으로 치달았습니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계속하며 그 수준을 고도화하더니 급기야 핵 무력 완성을 발표했습니다. 미국 주도로 유엔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외교적 제재를 사상 최고로 강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7월 6일 ‘신(新)베를린 선언’을 통해 한반도 평화구상을 밝혔습니다. 문대통령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경고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습니다. 문대통령은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올해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문대통령에게 화답했습니다. 김위원장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충돌과 전쟁위협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김위원장은 2월 평창동계올림픽 참가의사를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남북대화 재개에 기여했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대화의지를 확인한 기회로도 작용했습니다. 평창의 겨울은 한반도의 봄을 몰고 왔습니다. 그 후의 변화는 세계의 상상보다 더 빠르고 크게 전개됐습니다.
 
4월 27일 남북한 정상이 한반도 군사분계선상의 판문점에서 회담했습니다. 북한의 김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두 정상은 연내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평화체제 수립에 노력하자는데 합의했습니다. 두 정상은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개최에 공감했습니다.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도중에 갑자기 동요하던 5월 26일 남북한 정상은 판문점에서 다시 만나 북미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한 지혜를 나누었습니다. 6월 12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열었습니다.
 
북한과 미국의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확인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최장·최강의 적대관계를 계속해온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자는 데도 합의했습니다.
 
이런 연쇄회담을 전후해서 많은 변화가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은 핵실험 시설 한 곳을 공개리에 폭파했습니다. 미사일엔진 시험장 폐쇄를 미국에 약속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연합군사훈련의 유예를 결정했습니다. 남북한 사이의 비무장지대에서 상호비방방송이 중단됐고, 확성기가 철거됐습니다. 남북한 이산가족이 8월 하순 금강산에서 재회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센토사 합의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남북미 3자의 선순환 구조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남북한의 합의를 미국과 북한이, 그리고 미국과 북한의 합의를 남북한이 확인하고 보장하며 실행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선순환 구조의 중심에 한국이 있습니다. 한국의 대통령과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때로 주도하고 때로는 중재하는 역할을 갈수록 더 많이 요구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용의가 있습니다. 한국은 북한과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모든 관련 국가들의 이해와 협력을 얻어가며 그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후속과제들을 협의하기 위한 분야별 남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통일부장관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을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은 전반적인 후속조치들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군사회담은 비무장지대 안팎의 군사적 긴장환화 조치를, 체육회담은 7월 초의 통일농구대회와 8월 아시안게임 공동입장 및 일부 단일팀 구성을, 산림협력분과회의는 남북산림협력 문제를, 적십자회담은 이산가족상봉을 논의했거나 하고 있습니다. 철도협력분과회의와 도로협력분과회의도 열립니다. 
 
남북한 사이의 교류협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추진하려 합니다. 첫째는 남북한 사이의 협의와 준비를 거쳐 추진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산림협력, 체육교류, 비무장지대 군사적 긴장완화조치, 이산가족 상봉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 사업은 남북 간의 협의와 준비가 되는 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둘째는 유엔의 대북제재와 관련되는 사업입니다. 남북한 사이의 도로와 철도 연결 같은 경제협력 사업이 그것입니다. 이들 사업은 대북제재가 해제되기 이전에는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초조사 등을 우선 시작하려 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저는 남북한이 이제까지도 몇 번이나 평화공존을 시도했으나 좌절되곤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를 여러분은 묻고 싶을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많은 난관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과거와는 다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답변하겠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북한이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으로 경제우선의 정책노선을 채택한 그 절박성과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선대의 군사우선 정책을 핵과 경제의 병진정책으로 바꾸고 올해는 경제우선 정책으로 전환한 김위원장이 군사대결 국면으로 되돌아가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본격적인 경제지원과 체제보장은 완전한 비핵화와 연동돼 있다는 것을 북한 스스로 이해하고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둘째, 남북한 정상회담이 한 달 사이에 두 차례, 올 가을에 또 한 차례 열리고, 북미정상회담이 사상 최초로 열릴 만큼 한반도와 주변 상황이 변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남북한과 미국의 정상들 사이에 상당한 신뢰가 쌓였다고 봅니다.
 
셋째, 북한 핵문제와 체제보장을 교환하는 최초의 북미정상간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1994년 북한-미국 사이의 제네바 합의, 또는 2005년 6자회담의 결과로 나온 9·19공동성명은 정상이 아닌 실무선의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정상간 합의이기 때문에 실행력이 그만큼 커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 막 시작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예전에 생각은 있었더라도 가보지는 못한 길입니다. 한국정부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지혜와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민족 공동번영의 길로 꾸준히 직진할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지도자들께서 한국정부의 이러한 노력을 이해하시고 협력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한반도의 분단은 한민족의 선택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배와 미소 냉전체제의 비극적 유산이었습니다. 이 비극을 끝내는데 국제사회가 도와주셔야 합니다. 한국정부는 한반도 냉전해체와 분단극복으로 가는 평화 프로세스를 굳건히 이행해갈 것입니다. 
 
유럽의 냉전체제가 와해된 후에도 30년 가까이 냉전지대로 남은 한반도를 냉전의 질곡에서 구출하는데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정부는 지구 최후의 냉전지대 한반도를 세계평화의 발신지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 평화의 대장정에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첨부: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개회식 기조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