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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 축사

  • 작성자 : 연설문관리자
  • 등록일 : 2018.04.05
  • 조회수 : 3379

제62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 축사 (한국프레스센터)

존경하는 신문인 여러분, 귀빈 여러분, 예순두 돌 신문의 날을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병규 한국신문협회 회장님, 이하경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님, 정규성 한국기자협회 회장님, 좋은 자리를 열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님, 이민규 한국언론학회 회장님, 김영찬 한국방송학회 회장님과 우원식 대표님, 김성태 대표님, 조배숙 대표님, 김동철 대표님, 이정미 대표님, 유성엽 위원장님, 김상곤 부총리님과 여러 장관님들, 박원순 시장님, 성낙인 서울대 총장님을 비롯한 귀빈 여러분, 고맙습니다.
 
오늘 ‘한국신문상’을 받으신 국민일보, 부산일보, 중앙일보, 영남일보의 기자 여러분께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한국의 신문발전에 기여해 오신 모든 신문인과, 국내외에서 취재와 보도에 애쓰시는 신문기자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은 저의 말씀을 좀 엉뚱한 이야기에서 시작할까 합니다. 아직도 기자티를 못 벗었다고 나무라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1770년부터 1831년까지 살았습니다. 그 헤겔이 생전에 이런 주장을 남겼습니다.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한때 종교가 가졌던 것과 같은 독점적 지위를 이제 뉴스가 점유하고 있다.”이런 말씀을 하신 게 1831년 이전이었습니다.

헤겔에 따르면, 인류에게 종교가 했던 역할을 뉴스가 대체한지 최소한 2백년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중요해진 뉴스의 전달매개로서 신문은 시종 압도적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신문의 압도적 지위가 50여 년 전부터 흔들렸습니다. 신문보다 더 빠르고, 더 편하고, 더 강력한 매개가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때마다 신문은 압도적 지위에서 점점 밀려났습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신문의 위기’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신문의 위기’가 그것만은 아니라는 데에 신문의 더 큰 위기가 있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동판 활자와 윤전기가 사라진 것은 신문이 감당해야 하고, 감당할 만한 기술적 변화였습니다. 신문의 그릇이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확대된 것도 속도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발전이라고 여김 직합니다.
 
신문에게 진정으로 아픈 것은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신문의 ‘순종적 수용자’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신문을 평가하고 감시하며, 버릴지 말지를 자유자재로 선택합니다. 기자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헤겔이 종교를 대체했다고 말한 뉴스도 이제는 중세의 종교 같은 ‘순종적 수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게다가 가짜 뉴스까지 만들어지는 세상이 됐습니다. 뉴스 전체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것입니다. 신문은 경영의 위기뿐만 아니라, 뉴스 전체의 ‘신뢰의 위기’까지 겹쳐서 맞이하게 됐습니다.
 
신문의 잔칫날에 어두운 말씀을 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이제 반대의 말씀도 드리겠습니다. 1980년대에 제가 일하던 신문에 뉴욕타임스 발행인 솔즈베리와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기자가 “이제 ‘방송의 시대’가 됐다고들 하는데, 뉴욕타임스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솔즈베리 발행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이 신문을 보니까요.”
 
신문은 위기에 처한 것이 사실입니다. 산업으로서도, 신뢰에서도 위기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위기이더라도 신문의 역할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신문인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는 21년을 신문기자로 살았던 사람으로서,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신문이 활발히 수행해 주기를 늘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신문의 기여를 평가하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신문의 날’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좋은 신문들이 대한민국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대한민국이 역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으며 이만큼이나마 발전해 온 데는 신문의 공헌이 매우 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신문이 그런 역할을 계속해 주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신문인들의 품위와 긍지를 늘 존중할 것입니다. 공정하고 건강한 언론 환경이 조성되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지역신문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피겠습니다. 신문인 여러분의 좋은 활약을 변함없이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첨부: 제62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 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