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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역대 연설문․메시지

헷센 평화문제연구소 연설문

  • 작성자 : 공보비서관실
  • 등록일 : 2005.10.19
  • 조회수 : 4825
2005. 10. 18(화) 헷센 평화문제연구소 연 설 문 존경하는 Mühler 헷센 평화문제연구소장님, Steinberg 괴테대학 총장님,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 오늘 이렇게 평화와 군축분야에서 독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헷센 평화문제연구소의 주관으로, 오랜 학문적 전통과 권위를 지닌 괴테대학교를 방문하여 연설을 하게 된 것을 무척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이 10월의 독일 하늘에는 통일위업 달성을 자축하는 환희의 송가가 힘차고 드높게 울려 퍼졌습니다. 독일인들의 승리감과 환호는 통일을 민족적 과제로 삼아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도 흥분과 선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로서, 오늘 이곳 독일통일의 현장에서 우리의 분단극복 방안에 대한 비전을 밝히고 각오를 다지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 개인적으로도 독일과 프랑크푸르트는 각별한 인연과 애정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젊은 열정과 정의감이 정신과 영혼을 휘감아 도는 대학시절 사회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당시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중심으로 한 독일 사회학자들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많은 사회적 과제에 눈을 뜨게 해주었으며, 정의와 평등, 그리고 자유에 대한 가치와 비전을 심어 주었습니다. 졸업 후 독일유학의 꿈을 키운 적도 있었으나, 독일의 준엄한 사회학이 심어준 가치는 저에게 유학의 길보다는 군부 독재정권을 청산하고자 하는 민주화 투쟁과 투옥의 길을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덕분에 감옥에서 잉에 숄(Inge Scholl)의 ‘Die Weiβe Rose’를 읽으며 독일어도 공부하고 나치즘에 저항하는 자유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숄 가문의 남매들과 그 친구들의 용기와 양심은 저에게 커다란 정신적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저의 정치적 이상과 역정은 독일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편으로 저의 학창시절을 지배한 주요한 테마중 하나가 한반도에서의 분단극복과 통일문제였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 이렇게 통일 위업 달성으로 전 세계인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사고 있는 독일인들에게 우리의 분단과 통일문제를 얘기하게 되니, 그저 감개가 무량할 뿐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20세기 후반 최대의 역사적 사건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통일이었습니다. 무너진 베를린 장벽은 반세기에 걸쳐 동서로 나뉘어 있었던 이념과 체제의 갈등과 대결구조가 해체되고, 화해와 협력의 신질서가 개막되고 있음을 알리는 역사적 기념비였습니다. 그 후 16년 동안 독일의 분단질서 관리와 통일사례는 아직도 분단된 조국을 통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과 시사점을 제공해 왔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독일의 성공적 사례를 따라 배우고, 통일이라는 기나긴 길에서 범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수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독일통일을 지켜보면서 얻는 교훈은 헤아릴 수 없지만 저는 네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번째는, 정책의 일관성과 확고한 교류·협력정책의 중요성입니다. 독일통일의 가장 큰 원동력은 분단이후 일관되게 추진된 「독일정책」, 이른바 “도이치란트 폴리틱”(Deutschlandpolitik)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데나워」 총리는 親서방 정책을 통해 확고한 안보환경을 일궈냈습니다. 그리고 「브란트」 총리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일관되게 추진하여 동·서독간, 그리고 구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공존과 긴장완화의 틀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꾸준한 교류·협력의 성과가 「콜」 총리의 통일의지와 결합되면서 독일통일이라는 세계사적 위업이 달성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경우 독일과는 달리 전쟁으로 인한 적대감과 상호불신으로 20년동안 접촉이 단절되었다가, 1970년대 초에야 비로소 남북적십자회담이라는 준당국간 대화를 통해 접촉의 물꼬를 트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8년 김대중 전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북한을 본격적으로 포용하는 햇볕정책을 추진하여 2000년에는 마침내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까지 개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를 계승 발전시켜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함으로써 현재는 남북관계가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그간 대북 포용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한 결과, 이제는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이 정례화되고 제도화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간에는 연평균 30회, 금년중에는 9월까지 22회의 각종 남북대화가 개최되었습니다. 남북교역은 2002년 6.4억불로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금년에는 10억불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인적교류 면에서도 1989년부터 1997년간 총 2,405명으로 연평균 267명의 교류가 있었으나, 1998년에서 2004년간에는 70,116명으로 연간 11,302명이 교류하여, 약 42배가 증가하였습니다. 개성공단사업,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공사, 금강산관광사업의 3대 경협사업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성공단사업의 경우 남북 최초의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일뿐 아니라,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넘나드는 사업으로서 그 상징성이 매우 큽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미 밝히셨듯이 우리정부는 앞으로도 북핵문제 해결과 더불어, 북한에 대해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을 시행해 나가고, 교류와 협력을 본격적으로 심화·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우리는 독일이라는 경제대국도 통일의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통일의 길에는 열정 못지않게 철저한 준비와 면밀한 관리가 필요함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우리 한국인이 얻은 두번째 교훈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독일의 경우처럼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흡수통일의 시도는 북한의 반발과 함께 주변국들의 개입을 초래하고, 한국이 부담하기에는 너무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많습니다. 특히, 현재의 우리 경제규모로서는 막대한 통일비용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1990년 통일당시 동독은 서독의 경제규모의 1/3 수준이었으나 현재 북한은 남한의 1/33밖에 되지 않으며, 인구면에서도 서독이 동독에 비해 4배였으나 남한은 북한에 비해 2배밖에 되지 않습니다.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1인당 부담액은 휠씬 크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한반도에 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주변 4국과의 지정학적 관계와 전쟁을 치루었던 남북 양측 주민간의 통합 문제 등 정치, 사회적 어려움 역시 독일보다 더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흡수통일 방식은 우리 현실에 비추어 결코 적절하지 않은 방안이라는 것이 우리 정부의 인식입니다. 우리가 독일로부터 배운 세 번째 교훈은 통일은 평화적이고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독일의 경우 뿐 아니라 다른 분단국들의 경험에서도 얻을 수 있었던 교훈입니다. 예상과는 달리 급작스럽게 다가왔던 독일의 통일은 사회전반에 예상치 못했던 후유증을 남기면서 지금까지 독일의 내적통합과 균형된 발전에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력을 통해 통일을 시도한 베트남의 경우 국제적인 전장으로 전락하여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초래하였습니다. 정치지도자간 합의로 통일을 이룬 예멘은 민족적 합의절차를 무시함으로써 결국 내전 발발이라는 비극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례들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우리는 통일이 단순한 영토결합이나 정치권력의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합의에 기초하여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점진적·단계적으로 이룩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현 상태에서 우선 남북간 교류와 협력을 심화·발전시키고, 교류협력의 성과가 축적되어 각 분야에서 공동체가 형성되어 나가면, 그 기반위에 국가연합단계를 거쳐 종국적으로 통일에 이른다는 것이 우리의 점진적·단계적 접근방안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독일통일의 네 번째 교훈은, 통일을 이루는데 있어 국제적 지지와 협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서독정부는 진지하고 성의 있는 노력으로 통일독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전에 불식시켰습니다. 나아가 그들 국가들의 협력과 협조도 얻었습니다.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유럽속의 독일”을 추구하겠다는 서독정부의 약속은 주효했습니다. 국제사회가 그 약속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주의와 국제평화를 위한 서독정부의 진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정부도 대북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이해를 높이고 이에 대한 지지와 협조를 얻기 위해 적극 노력해 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평화번영정책은 과거 서독정부가 견지해 온 “유럽속의 독일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증진이 곧 동북아 전체의 공동 번영과 직결되어 있으며, 한반도의 평화 전략에는 남·북간 직접대화뿐 아니라 주변국과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긴요하다는 것이 동북아 평화번영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002년도에 다시 불거진 북한핵문제는 한반도 문제의 국제적인 성격과 동북아 평화번영정책의 유효성을 입증하는 시험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핵문제는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여하는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논의되어 왔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핵 불용,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 직접 당사자로서 적극적 역할 수행이라는 3대 원칙하에 북한 핵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관련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지난 9.19 마침내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 포기를 공약하는 대신, 여타국들이 북한에 대해 안보우려 해소, 관계정상화, 경제협력 및 에너지 지원을 약속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북한 핵 폐기의 절차와 방법, 시기 등은 계속해서 협의해 나갈 사항으로 남아 있지만, 이번 합의는 우선 시급한 북한 핵 위협의 해소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북한 핵 폐기와 함께 북한의 주요 관심사항을 포괄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므로 북한 핵문제를 근원적이고 포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번 6자회담 합의에서 직접관련 당사국들이 향후 별도의 적절한 포럼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문제를 협의키로 한 것도 큰 수확이라고 하겠습니다. 한반도에서 오랜 정전상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냉전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시발점을 마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정부는 앞으로 평화체제구축을 위해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먼저 남북간에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를 실현함으로써 전쟁을 방지하고 남북간의 평화공존을 정착시켜 나갈 것입니다. 아울러 북한과 미국·일본간의 신뢰 구축과 관계정상화를 도와 한반도 안보환경의 안정성을 제고해 나가면서, 한반도에 법적·제도적으로 항구적인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작업이 본격화되면, 헷센 평화문제연구소를 위시한 유럽 각계의 다양한 관련경험이 우리에게 소중한 참고가 될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당부드립니다. 귀빈 여러분! 지난 9.19의 6자회담 합의를 통해 6개국은 또한 동북아지역에서의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키로 합의하였습니다. 탈냉전이후 동아시아지역에서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국가간 갈등 가능성이 잠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핵문제, 양안문제, 영토문제와 같은 전통적 안보문제이외에, 테러, WMD, 마약, 인신매매와 같은 초국가적 범죄, 보건, 자연재해와 같은 새로운 안보이슈도 중요한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포괄적이며 협력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다자안보협력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지역은 여타지역과는 달리 양자 동맹 중심의 안보구조는 존재하였지만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체계적이고 다자적인 안보협력의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 예외적인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자회담을 통해 동북아에서의 다자적 안보협력 증진 노력에 합의한 것은 역내안보환경을 중장기적으로 보강해 나간다는 차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또한 독일통일의 기저에는 구주안보협력기구(OSCE)의 다자간 안보협의체를 통한 유럽내 군축과 긴장완화, 평화 구축의 성과가 있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독일이 유럽의 역내통합에 적극 참여하고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거듭남으로써 주변국들의 신뢰와 협조를 확보할 수 있었던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를 볼 때, 다자차원의 안보협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유지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독일통일은 지난 세기 인류를 양 진영으로 갈라놓은 냉전질서 타파의 새로운 새벽을 여는 에오스 여신으로서 세계사적 의미를 부여받았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냉전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의 분단구조 극복을 통해 독일 통일로 시작된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완결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화해와 협력’이라는 新세기 역사발전의 대세에 동참하는 세계사적 소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귀빈 여러분! 2005년은 독일내에서 ‘한국의 해’가 선포되어 연중 독일 각지에서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각종행사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대한 독일 국민의 이해와 우의를 한껏 높일 수 있는 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금년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와 지적유산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우리나라는 전쟁과 분단, 경제발전, 핵문제, 축구와 같은 일부 스포츠에 국한되어 세계인들에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역사를 자랑하는 푸랑크푸르트 도서전과 같은 행사를 통해 한국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와 깊은 관심이 독일 내에서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이곳 대학은 그 이름부터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지성 괴테(Goethe)의 혼이 어리어 있는 곳입니다. 괴테 시인은 ‘행위와 인내로 개선되지 않는 것은 결코 없다’고 설파했습니다. 우리는 ‘진실한 행위’와 ‘부단한 인내’로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과 동북아, 나아가 세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노력해나가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